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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25 부케와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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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버린 친구가 있다. 저 멀리 미국으로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녀석이었다. 벌레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무척이나 친구가 많았다.
난 그 중의 한 명일뿐이다. 물론 친해지려 노력하였고, 그와 난 서로 충고도 해주고 하였지만 난 단지 친구 중의 한 명일뿐이다.

Ironical하게도 그의 여자 친구를 좋아하였고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승리의 포용이랄까 하여간 그런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질투를 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나에게 그녀의 비밀 내지는 성격 등을 집요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런 그에게서 난 그녀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럭저럭 사귀고 있던 어느 날 그가 이민을 간다는 소문을 들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아니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 건 불가항력적인 진실이었다.
그를 만나기도 기피했건만 난 그 앞에서 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결국 그 녀석은 안개꽃 속에 묻힌 채 싱겁게 떠나가 버렸다. ‘약속’이란 꽃말은 꽃처럼 차갑게 시들어 버린 채......

눈물의 의미도, 떠난 이유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가버렸다.
그를 잊지 않겠다고 한 그 순간부터 그를 잃어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난 그때 무엇이었을까?

- 2 -

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소리소문도 없이
편지 속에 지나가듯 던져진 그녀의 결혼 소식은 날 초라하게 만들었다.

89년 5월 어느 날 난 친구의 소개로 그녀를 만났다.
그 녀석이 사귀었던 여자라면서. 그가 세례를 받던 날이었다. 아무 느낌이 없던 첫 만남이었다.
늘 그 입가에 머물던 미소와 눈가에 드리워진 웃음의 그림자가 인상적이었을 뿐이었다.
우연찮은 계기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녀는 자주 놀러 왔다. 같이 다니던 한 친구와 멀어지게되고 그 녀석과의 싸움에서 난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난 그렇게 믿고 있다.)
때마침 외롭고 힘든 싸움을 계속하던 나에게 동반자로서, 동지로서 다가와주었다. 그녀에게서 위로를 받았고 그녀 때문에 말못할 싸움을 이기게 하였고 또한 그녀 때문에 그 녀석과는 더욱 멀어지게되고.
시간이 흘러 나와 그녀는 대학에 가고 학교 생활에 바빠 만날 기회마져 잃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떠났다. 부산으로 떠나가 버렸다.
모든 건 서울에 남긴 채. 그리고 우린 잊었다.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난 군인이었다. 입가의 미소와 눈가의 웃음의 그림자를 간직한 채 다시 만났다.
나, 다시 귀영한 후 반년이란 시간이 가버린 지금 그녀는 결혼을 했다.

· · · · · · ·

고등학교 3년간 만나 만나서 같이 어울리던 한 여자가 시집을 갔다.
그 외에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부케를 든 모습을 상상한다.
책가방을 둘러 맨 고등 학교 시절의 모습과 비교한다.

지금 나에게 남은 건 반지와 덩그러니 남겨진 나......
난 지금 무엇일까?

- 3 -
난 사랑이라 믿는다.
또한 삐뚤지 아니한 사랑이라 믿는다.
순수한 시절에 만든 추억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이젠 돌아갈 수 없다.
예전의 그녀가 옛 시절의 그가 될 수는 없다.
· ·
지금 이 시간 기도 해본다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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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휴가를 갔다온뒤 쓴 글이다.(토씨 하나 고치지 않았다.)

지금 읽어보니 동아리 날적이 같은 곳에 적어놓기에 적당한 글인듯 싶다.
'불가항력적인 진실', '꽃처럼 차갑게 시들어 버린 채......'라는 등의 낯간지러운 말들을 쓴다거나, 도치법을 사용했다거나, 말줄임표의 남발같은 것은 군대가기 전 동아리 날적이에 쓰던 글의 전형적인 글투였다.
그때는 그런 것을 쓰면 좋은 줄 알던 시절이었다.

안개꽃의 꽃말에 약속이 있기는 하지만, 약속보다는 죽음을 더 많이 상징한다거이나, 제대하고 한참을 지나서 결혼한 것이나(잘못된 소문을 전해준 것인것 같다.) 등을 보면 잘못된 정보를 이용해 글을 쓰기도 했다.
군에 매여있던 시절에는 세상 모든 것이 군대때문에 잘못돌아간다고 믿고 있을때였다.
이글은 민망하다 못해 쪽팔리는구나...ㅠㅠ

Posted by The 賢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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